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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성지

신리성지-당진에 위치한 순교사적지

by 여행하는 개집사 202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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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성지

신리성지는 조선 시대 천주교 수용 초기부터 형성된 교우촌이며 주민 400여 명이 모두 천주교 신자일 정도로 규모가 매우 큰 곳이다.

신자가 많았던 만큼 박해도 매우 심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를 통해 신리마을 전체의 신자가 순교하거나 피난할 정도였는데 인근에 있는 무명 순교자들의 묘가 이를 말해준다.

신리는 박해를 겪는 조선 천주교회의 중심지 역할도 하였다. 서해를 통해 들어오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기착지였고, 5대 조선교구장인 다블뤼 주교가 머무르며 사목활동을 한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블뤼 주교와 위앵 신부, 오 매트르 신부, 황석두 루카, 손자선 토마스가 신리에서 체포되어 갈매못과 공주에서 순교했고, 훗날 천주교 성인이 되었다. 

신리의 다섯 성인들을 기리는 기념 성당에는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다섯 성인의 시성 30주년을 기리며 다블뤼주교 기념관을 건립하고, 2017년 기념관 지하에 순교 미술관을 개관하였다.(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

 

신리성지
신리성지

신리성지는 넓은 평야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공원같이 조성되어 있다. 신리성지는 순교성지가 아니어서 그런지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순례길에 오를 수 있었다. 늦은 가을의 아침을 맞이한 성지는 평화로운 마음까지 들게 하였다. 하지만 성지라는 곳이 마냥 가벼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성 다블뤼 주교관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왼쪽에 보면 통유리로 된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성지의 식당이며 미리 예약을 하면 식사가 가능하다. 뒤에는 성모 마리아 님의 동상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성 다블뤼 주교관이 있는데, 이곳이 다블뤼 주교의 비밀 성당이자 주교관이었다고 한다.

집은 초라한 초가집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겉모습과는 다르게 그 안의 의미는 아주 넓은 세상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곳에서 그분들은 자신의 신념과 종교를 위해 서로 의지하고 화합했으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리라.

 

성당

신리성지의 야외 성당은 넓은 공터에 마련되어 있고 건물 안쪽은 작은 성당이 있었다.

신리성지의 미사 시간 - 주일 오전 11시, 평일 오전 11시(월요일 미사 없음)

신리성지-성당
신리성지-성당

야외 성당의 오른쪽에는 세 개의 종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날은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 뒤로는 우리나라 유일한 성화 미술관인 순교 미술관이 있다. 이곳에는 신리 교우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순교 기록 화등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신리성지-순교미술관
신리성지-순교미술관

순교 미술관의 꼭대기에 달려있는 십자가는 윙 애신부가 쓴 편지 내용 중 신자 400명이 맞이했다는 내용을 보고 철사 400개를 엮어서 만든 십자가라고 한다. 성지를 둘러보다 보면 참 평온하고 차분해지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순교 미술관을 방문하기 위해 건물에 들어 가려했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실내 미술관을 개방하지 않는다고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코로나는 여러모로 많은 피해와 불편함을 준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천천히 십자가의 길을 돌아보았다. 1처부터 마지막까지 거리는 조금 있었으나 평탄한 길이어서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높은 언덕이나 산행이 아니라 평지여서 그런지 조금 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신리성지-십자가의길
신리성지-십자가의길

신리성지의 성지순례를 마치며 만약 시간적이 여유가 있다면 근처 합덕성당이나 솔뫼성지를 들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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